하종강의 노동과 삶- <나는 무슨일 하며 살아갈까>
4월 3(화) 푸른바다생협 공개강좌
노동운동을 해오면서 우리사회의 엘리트라고 할만한 변호사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들이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보장된 평탄한 삶 대신에 이런 삶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에서 이 강의는 시작한다. 하종강씨는 이들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적 가치는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존에 받아왔던 교육은 개인에게 생기는 전반적인 문제의 최종적인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시중에 봇물처럼 밀려 나오고 있고 많이 팔리고 있는 자기 계발서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하고 자신을 계발하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성공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빈부의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실업률이 내려올 줄 모르고 비정규직이 늘면서 삶의 질이 추락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성실하고 능력이 없어져서일까?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사회의 구조(법,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사회 문제들을 구조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중.고 학교 교육이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나무들은 성장을 방해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작은 나무가(개인이) 노력을 하여 스스로 잘 성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큰 나무의 지나치게 잘 자란 일부 가지를 쳐내어 작은 나무들에게도 햇빛을 받아 자생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작은 나무가 잘 크기 위한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 행복한 삶을 살 권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지극히 정당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는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보는 시각이어서 이러한 권리 주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파업하는 사람을 비난하면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 나아가 시민의 권리도 침해받는다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동 교육을 학습 과정에 포함시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와 공감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란 단어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이고 노동자 파업을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유럽에서는 공무원도 국가 권력에 고용된 노동자란 인식이 보편적이어서 판사노조, 변호사노조도 있으며 군인노조도 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놀랄만한 일이지만 노동자나 노동운동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나라가 세계적으로 오히려 드물다고 한다. 지위가 높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고 노동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것은 후진적인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위험한 수준에 이를 만큼 비정규직이 많은 나라다. 물론 고학력자들도 피해갈 수 없는 비정규직의 실태는 외국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나 정부 관계자 그리고 사용자들은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발목을 붙잡는 심각한 사안임을 모르는 것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는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이다. 엄청난 경쟁을 거쳐 대학까지 나와서 결국 노동자가 되기 위해 취업전쟁에 뛰어든다. 그렇게 치열한 취업전쟁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은 소수이고 나머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거나 노동자의 신분을 얻지 못해 알바생, 백수가 되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목격하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부모가 한평생 노동자의 삶을 사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자신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문제에 아는 것이 없고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가하고 질문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36년의 식민지 시대, 해방되자 곧 전쟁에 휘말리고 남북이 분단되어 60년(군사 독재 30년)이 흘렀다. 식민지 시대에 출세를 위해 민족을 배반하고 국민을 핍박했던 친일파들이 해방이후 전쟁과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그들이 다시금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게 되는 왜곡된 역사가 지금의 비정상적인 사회인식과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친일파가 단죄되지 못하고 기득권층이 되면서 지배세력에게 불리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칠 수가 없게 되는 것이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늘린 세력이 노동운동을 가르칠 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불편한 일이므로.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이 여러차례 집권한 경험을 가지는 것이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임에도 유독 한국에서만 없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높은 복지 수준이 거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부유층이나 지배세력은 자발적으로 가진 것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운동이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얻어진 결과인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나도 노동자다라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가 그토록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교육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중립, 기계적인 양비론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무가치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쪽으로 치우친 저울을 바로하기 위해 한가운데에 앉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반대쪽에 힘을 실어야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한국사회를 바로잡는 일은 왼쪽으로 힘을 실어야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사회운동을 하고 노동문제를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를 진보시키는 힘이라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 자, 사회적 약자-장애인, 노인, 여성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다면 한 길을 그렇게 30년동안 걸어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가슴을 울리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힘은 하종강씨의 진정성이 전달되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백 걸음이 아니라 백 사람의 한걸음 진전이 민주주의라고 했던가. 우리가 동경하는 유럽의 복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십년에서 수백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한다면 오늘 비록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하고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 나아갈 일임을 다시 생각해 본다.
노동과 삶-하종강(한국노동문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