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양파 -임길택
강은조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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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8 21:48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겼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국민학교 1학년때 편지를 보내주신 선생님 외에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었는데 아이들 책 공부를 하면서 참 좋은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농담으로 선생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누군가가 \"야, 권상우다!\"라고 해서 한바탕 웃기도 했구요, 젊은 나이에 선생님이 저 세상으로 가신 사실을 알게 됐을때는 가슴 한 구석이 짠했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면 어린이 책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꼭 한 번 뵙고 싶었거든요.
선생님의 책 <<수경이/임길택/우리교육>>에 있는 아버지와 양파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좋은 글을 생협이라는 곳에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눠 읽고 싶어서 느린 타자 솜씨로 거의 머리 꼭대기에서 연기를 폴폴 피우며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고 느껴 보시기를...
왜 우리가 쌀을 지키자고 나서야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실련지. 그리고 그 예전에 이미 이런 글을 쓰셨던 선생님이 다시금 존경스럽습니다. 자서전에 보면 농사를 지으시는데 농약 안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셨더라구요.
아버지와 양파
임길택
봄이 시작된 지 오래였다. 겨울 추위에 하얗게 얼어붙었던 개울가 얼음들이 어느 새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꽃을 피웠던 버들개지들이 꽃가루를 날리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누가 말하지 않았지만 밭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보, 어서 저놈의 양파 좀 어떻게 합시다.”
어머니가 경운기에 두엄을 내고 오는 아버지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더 둡시다. 나는 이 썩어 가는 양파 냄새를 더 맡고 싶소.”
“그런다고 무슨 일이 돼요?”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냄새를 맡아 주겠소.”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누가 보았어야 했다. 언제부턴가 양파를 쌓아 놓은 헛간에 가까이 가면 무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엔 맡아 볼 수 없는 냄새였다, 성현이도 처음엔 그게 무슨 냄새인지 몰랐다.
“어머니, 헛간에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나요. 왜 그래요?”
“그놈의 양파 썩는 내 아니냐.”
“양파 썩는 내라고요? 그럼 양파를 팔지 못하겠네요.”
“양파를 못 파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어서 치워 냄새라도 안 나게 해야 되겠는데 늬 아버지가 저리 고집만 파우신다.”
성현이네는 지난해에 양파를 일흔 자루 거두었다. 그 가운데 친척들에게 몇 자루 나눠 주고, 팔아 먹은 것 다섯 자루를 빼면 지금 헛간에는 예순 자루쯤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성현이네가 마을에서 양파를 가장 많이 거둔 집은 아니었다. 성현이네에 견주면 다른 집들이 훨씬 많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집들과 성현이네가 농사 지은 것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성현이 아버지는 이 달밭 마을에 한 사람뿐인 정농회 회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농사를 지어 사람을 살리고, 땅도 함께 살릴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는 건 그래도 무슨 말인 줄 알 것 같은데, 땅을 살린다는 말은 성현이도 처음엔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하며 주고받는 이야기며, 아버지가 정농회 모임에 나가 배워 온 걸 듣고. 성현이도 이제는 땅을 살려야 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들은 땅을 마구 부려먹기만 한다고 했다. 거름을 사다 뿌리고, 풀 죽이는 약을 써서 손쉽게 농사를 지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땅이 병들어 있다고 했다. 땅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란 곡식들 또한 병이 잘 생겨난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더 많은 약을 뿌려야만 하고, 그렇게 거둔 곡식을 우리가 먹으니 우리도 따라 병이 들 수밖에 없고.
이런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이웃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을에선 성현이네만 농약과 비료를 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이런 성현이네를 마을 사람들은 비웃기까지 했다.
“우리가 그렇게 농사짓는다고 도시놈들이 알아 주기나 할 줄 아는가?”
“그들이 알아 주라고 농사를 지어선 안되지요. 하느님이 주신 우리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지요.”
“하느님 같은 소리 말게. 하느님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여. 하느님이 있었다면 이 날 이 때까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걸세.”
아버지는 언제나 이야기를 하면 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련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버지 방법대로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지은 건 아니었다. 아버지도 군대에 갔다가 와서는 돈 벌 욕심으로 누구보다도 농약을 많이 치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졌는데도 내일 다시 시간을 내기 뭐하다며 힘겹게 농약을 치고서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나가 며칠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뒤부터 아버지는 농약 치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지금처럼 새로이 농사를 지어 오고 있었다.
이러면서도 아버지는 풀밭 매기가 너무 힘들 때면, ‘한 번만 풀약을 쳐 볼까?’ 하는 생각이 일곤 한다고 했다.
성현이네가 양파를 안 팔고 놔 두는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성현이네는 무엇이나 한 가지 것만 많이 짓지 않았다. 고루고루 조금씩 심어 성현이네 농산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 해 내내 고루 먹을 것을 대려고 애를 썼다.
이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 돈이 된다고 하면 너도 나도 그걸 무더기로 심었다. 그 때문에 어떤 해에는 배추 값이 비싸기도 하고, 하나도 팔 수 없어 밭에다 그대로 썩히는 경우도 있었다. 성현이 아버지는 그걸 가장 안타까워했다. 농사를 투기로 하니까 사람들 마음에도 병이 들어 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성현이네는 양파를 거의 팔지를 못했다. 성현이네 농산물 값은 정해져 있었다. 지난해나 지지난해나 똑같았다. 양파 한 자루에 만오천 원씩 팔았다. 지지난해 양파가 귀했을 때는, 한 자루 값이 이만 원씩 했다. 이 해는 마늘조차 안되고 양파 또한 흉작이었다. 그랬어도 성현이네는 정해 놓은 값 만오 천원만 받았다.
도회지에서 성현이네 물건을 사 가는 사람들은 더없이 좋아했다. 세상에 농약 한 방울 치치 않았는데 그렇게 쌀 수가 있느냐며 이웃들까지 데리고 와 순식간에 다 팔려 나갔다. 그러면서 다음엔 다른 곡식들도 얼마든지 사 가겠다며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성현이네 아버지 농사 방법을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현이네는 지난해에도 늘 심던 만큼만 심었을 뿐이었다. 대신 양파를 해서 떼돈을 번 이웃을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양파를 심는 바람에 양파가 넘치고 말았다. 그탓에 어디에 쌓아둘 곳이 없어 양파는 길가에서 그래도 썩기도 했다. 그러자 성현이네 양파를 사겠다던 이들이 소식조차 보내 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왕 팔 수가 없다면 친척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자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꾸지람만 들었다. 무엇이든 귀할 때 선물이 되고 그러는 것이지, 올처럼 흔해 빠진 때에 양파를 갖다 주면 짐만 될 뿐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남에게 무엇을 줄 때도 애시당초 그 몫으로 한 거라면 몰라도, 내가 먹다 남아 버릴 데를 찾다가 그걸 선물이랍시고 주는 건 죄가 된다며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말을 누구도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듯 어머니 잔소리에는 꿈적도 않던 아버지도 더 이상 그대로 양파를 둘 수 없었다. 이제는 집에 들르러 온 마을 사람들까지 양파 썩는 냄새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이 양파를 경운기에 실어다 밤나무밭 구덩이 있는 곳에다 쏟아 넣었다. 성현이도 경운기 싣는 일이며 밤나무밭에서 양파 쏟는 일을 도왔다. 양파 썩는 내가 성현이 코로만 오는 것 같았다.
이 날 밤이었다. 별다른 말없이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난 뒤, 아버지가 성현이를 불러 앉혔다.
“상현아, 너 몇 학년이 됐지?”
“육학년인데요.”
“벌써 그렇냐?”
“......”
성현이는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눈을 둥그레 떴다.
“너, 올 육학년만 마치고 중학교는 그만둬라.”
“예?”
“지지난해 우리 집에 양파 사 갔던 아주머니들 모두 많이 배운 이들이라더라. 날더러 양파를 더 많이 심으라더니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디서 그런 걸 배웠겠니?”
아버지가 얘기하는 사이 성현이는 저도 모르게 텔레비젼 위에 놓인 유리컵을 보았다. 거기에는 싹이 파랗게 올라오는 양파가 있었다. 오늘 밤나무밭에 썩은 양파를 내다 버릴 때 골라다 놓은 것이었다.
“내가 못 배워 너희들에게라도 공부를 시키려 했는데, 아니다. 이제 나도 우리 먹을 식량들만 조금 가꿀란다.”
시골 학교라지만 반에서 우등생이고, 선생님마다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 성현이는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성현이는 이 다음에 대학에 가면 농사 짓는 것을 연구하리라고 벌써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생각조차 아버지한테 말할 수 없었다.